인천교회 여고생 사망 사건: 구원파는 왜 윤리적으로 실패하는가 (feat.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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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회 여고생 사망 사건: 구원파는 왜 윤리적으로 실패하는가 (feat.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

바잇 카탄 2024. 6. 16. 18:34

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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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5월 16일 인천의 한 교회에서 합숙을 하던 여고생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교회 측에서는 이것이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현 시점에서 경찰은 이 사건이 단순한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 사건이 아닌 학대 치사 및 학대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여기고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24년 6월 1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에서도 해당 사건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다뤘습니다. 그알에서는 사망한 여고생이 머물고 있던 곳이 해당 교회의 합창단원들의 숙소였다는 것과, 그 합창단의 단장이 해당 교회의 설립자 P목사의 딸인 P단장이라는 것, 그리고 P단장이 지속적으로 단원들에게 폭력과 학대를 자행해 왔다는 것에 대한 내용 등 충격적인 사실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방송 내용에 의하면 P단장의 모욕과 학대에 지친 단원들이 합창단 숙소에서 탈출해 도주하자, 교회 측에서 팀을 꾸려서 다시 잡아오기 위해 뒤를 추적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P목사 역시 합창단을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따로 연락하여 탈퇴하지 말라는 압력을 행사하였습니다. P목사는 또한 설교를 통해 교회에서 탈퇴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2024년 5월 23일 성경 세미나에서 P목사는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파라고 비난한다”는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주요 교단이 구원파 이단이라고 결의한 교단 세 곳(기독교복음침례회, 기쁜소식선교회, 생명의말씀선교회) 중 하나입니다. 사실 구원파는 좋은 소식 보다는, 좋지 않은 소식들로 인해 뉴스에 오르내리곤 합니다. 오대양 사건, 세월호 사건, 인천교회 여고생 사망사건 등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자아낸 사건들의 중심에는 구원파가 있었죠.
 
 그렇다면 어째서 구원파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일까요? 구원파 3교단 중 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무려 두 곳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터졌다는 것은 구원파가 공유하는 어떤 요소가 범죄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왜 구원파가 윤리적 실패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합창단과 216호의 비밀. 인천교회 여고생 사망 사건
출처: 그것이 알고 싶다

 


 

구원파의 목표


 저는 구원파의 윤리적 실패는 그들이 설정하고 있는 교단 전체의 목표와 관련이 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이것은 크게는 그들의 교리적 입장과도 맞닿아 있을 것입니다.
 
 구원파 교단들이 내세우는 자신들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늘리는 것”입니다. 아마 이에 대해서는 모든 구원파에 소속되어 있는 분들 역시 동의할만한 핵심적인 목표가 아닐까 싶네요. 구원파는 소위 “구원 받은 사람”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 모든 시간과 자원을 쏟아붓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구원 받은 사람”이란, “내 죄가 용서되었다”라고 생각하고 믿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즉 구원파 교단들은 “나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라는 것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그것에 몰입된 사람들을 점차 늘려 나가는 것을 핵심적인 가치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정통 교단들을 향해 “지금 죽어도 천국 가는지 지옥 가는지 모른다. 자기들의 죄가 사해졌는지를 확실하게 모른다.”라고 조롱하는 것 역시 자신들은 “나는 확실하게 천국 간다. 왜냐하면 내 죄는 모두 용서되었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라는 명제를 굳건하게 믿고 확신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원파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최대한 늘리는 것이 이 세상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원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강연회, 곧 “전도집회”입니다. 전도집회란 수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위와 같이 “나의 죄가 모두 용서되었다”라는 생각을 갖게끔 만드는 작업을 하는 강연회입니다. 저는 비록 구원파 3교단 중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침례회(생명의말씀선교회)만 경험 하였기 때문에 다른 두 교단이 정확히 어떤 분위기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들 역시도 이 “영혼 구원”, 곧 “예수님으로 인해 나의 죄가 이미 모두 사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라는 가르침을 퍼트리고 이것을 믿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얻으려고 노력하는 행사들을 개최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들 교단들 역시 이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을 것입니다.
 
 구원파는 그리고 이렇게 “나의 죄는 용서되었고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라고 생각하게 된 시점 이후로 그 사람의 구원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혹시 비윤리적인 일을 하더라도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고 내 죄는 용서되었다”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웹툰 “이단 생활!” 3화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구원 받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구원파 사람들은 머뭇거리며 “구원 받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갈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정리하자면, 구원파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내 죄가 모두 용서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죽어도 천국 가며, 이것은 죄를 지어도 취소되지 않는다”라는 자기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최대한 늘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을 이 땅에서의 최고 사명이자 핵심적 가치로 여깁니다.
 
 이제 구원파의 이 목표가 어떻게 윤리적 실패로 이어지게 되는가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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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국 간다”는 사람들의 양산이 최고 목표라면?


 먼저, 저는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란 “어떤 상태에 있는 사람”을 양산하는 것을 궁극적 가치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기독교의 최대 목표가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에 있다고 예수님이 가르치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변화된 사람”을 늘리는 것에 집중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에 의하면 이것은 내 주변의 이웃을 사랑하는 윤리적 실천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부분들이 이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돌아가시던 날에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기독교의 궁극적 목표로 제시하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본래 기독교는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도록 변화된 사람”을 늘려 나가는 것을 최대의 가치로 설정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교회사를 통해 초대교회가 어떻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이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집중하였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께서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몸소 보여주셨던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불쌍하고 가난하며 약한 자들을 섬기는 것을 주요 특징으로 합니다.
 
 기독교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을 늘리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늘리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아니라, 나는 천국 간다”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을 늘리는 것에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사람들은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람”이 아니라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얻은 뒤에는 그 사람을 자신들과 똑같은 목표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으로 교육시킬 것입니다. 결국 이런 사람들이 모인 집단은 자신들처럼 “나는 천국 간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늘리기 위해 움직이는 전투적 전도 단체로 변모해버립니다.
 
 이 사람들은 궁극적인 목표가 “천국 갈 사람”을 얻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자신들끼리 모였을 때에 “나는 천국 간다”, “나는 구원 받았다”라는 사실을 서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 사실을 재확인 하는 것에 시간을 쏟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는 천국 간다”라고 생각하는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을 많이 늘리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할 것입니다. 또한 실제로 이렇게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의 경우에는 집단 내에서 큰 명예를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큰 명예를 얻는 것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것은 그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준 목사들입니다.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이 기독교의 궁극적 가치가 맞는다면, 사람들은 “내가 천국 간다”라는 생각을 가능하게 해준 목사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들을 극진히 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이 목사들 및 집단의 지도자들은 굳이 윤리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체의 궁극적 목표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만약 이 목사들이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에 집중하고, 이것을 위해 모든 노력을 쏟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 집단의 사람들은 이것을 궁극적인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이 목사들이 비윤리적인 모습을 조금 보인다고 해도 크게 문제라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집단은 모든 시간과 비용이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양산하는 것에 맞춰져 있으므로, 자신들 집단 외부의 사회에 유익이 될만한 일을 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모든 헌금이나 봉사 역시 내부 단체의 성장을 위해서 투자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부로 나가는 것은 없이, 내부에 끊임 없이 물질적 자원들이 쌓여만 갑니다.
 
 이 물질적 자원들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그 단체의 최고 존경을 받는 목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신도들에게 “천국 갈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이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을 위해 시간과 돈을 사용한다고 하면, 이 집단의 누가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집단의 사람들은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천국 갈 사람”을 늘린다는 명목 하에, 엄청난 양의 막대한 자금이 소수 지도자들에 의해 사용됩니다. 더욱이 이 지도자들은 이 자금을 불쌍한 사람을 돕거나 사회에 유익이 되도록 사용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자금은 자신들이나, 단체의 성장을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사업 확장, 합창단 운영, 웅장한 교회당의 건축 등은 모두 이런 논리 체계 위에서 충분히 합리화될 수 있습니다.
 
 
 

구원파의 윤리적 실패


 위에서 묘사한 것이 바로 정확하게 구원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구원파는 “내 죄가 이미 사해졌다”라고 확신하는 사람들, 곧 소위 “구원 받은 사람들”을 늘린다는 명목으로 이 모든 일들을 자행합니다. 이 과정에서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묵인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에 이 모든 것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파에게 남은 것이란 메마른 “성장 자체 뿐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왕국이 계속해서 규모가 커지기를 바랄 뿐, 이것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사회에 환원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 전파”의 명목으로 사업을 통해 자금을 축적하거나, 합창단 내에서 폭력을 행사하거나, 화려한 건축을 위해 신도들을 착취하는 것쯤은 다소(?) 비윤리적일지라도 눈감아줄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목사들은 “전도”를 궁극적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에, 굳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아도 신도들에 의해 훌륭한 사람으로 칭송 받을 수 있습니다. 신도들 역시 자신들이 “복음 전파”를 위해 교회에 봉사하고 있다면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 않더라도 거의 아무런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구원파 3교단 중 하나인 대한예수교침례회(이하 대침) 분들에게 그 교회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 그들은 “그래도 우리 교회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매우 심각하고 잘못된 태도, 곧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윤리적 문제점 등은 간과될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구원파 교인들에게 이런 삶의 태도를 가능하게 만든 목사들에게 구원파 교인들이 감사하고 대단한 사람으로 칭송한다는 것은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집단의 목사 및 지도자들이 성경이 말하는 선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인 “이웃 사랑”을 최고의 목표로 설정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도자들은 윤리적인 면 보다는 교회 성장에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 및 “복음 전파”라는 명목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종이라는 존경과 막대한 자금, 그리고 신도들의 헌신적 봉사가 제공된다면 과연 이들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종”으로 불릴 때 권력에 심취하여 이것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결국 범죄가 발생하여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국가가 개입할 때까지 이들의 만행은 계속될 것입니다.
 
 몇몇 구원파 분들은 자신들도 윤리적인 내용을 설교하며, 가르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그들의 교회는 막대한 자금을 불쌍한 이웃을 돕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들의 머리 속에는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사람을 늘리는 것”보다 앞 서 있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이미 용서되었다”에 집중하는 배타성


 구원파가 “내 죄가 이미 용서되었다”라는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을 양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정통 교단과의 결별을 초래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정통 교단은 이러한 확신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파는 정통 교단이 이런 확신이 없다면서 정통 교단을 비방하고, 일반 기독교 신자들을 조롱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은 “이 세상에 참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사실상 우리 교회 뿐이다”라는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됩니다. 이 잘못된 신념은 이들이 교회 내에서 악한 것들을 목격하더라도, 쉽사리 교회를 비판하거나 떠나지 못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 세상에 참된 복음을 전파하는 곳이 자신이 다니는 이 구원파 교단 뿐이라면, 이 교단 밖으로 나갔을 때 참된 교회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을 “천국 갈 사람”으로 만들어준 구원파 목사 및 지도자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이들에게서 떠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지 않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구원파 신도들은 이 구원파 교단 외에 “하나님의 종”과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교단을 통해서만 어떤 것을 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타성과 폐쇄성은 구원파 내부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에 이것을 외부에 잘 알리지 못하고 은폐해버리는 것의 이유입니다. 위의 “천국 갈 사람의 양산”에 집중하는 것이 윤리적 실패로 이어지는 것의 원인이 되었다면, “내 죄가 용서되었다”는 자기 확신에 집중하는 것은 정상적인 기독교와 분리되어 배타성과 폐쇄성을 띠게 되는 것의 원인이 됩니다.
 
 간혹 방송 매체 등에서 구원파의 “내 죄가 이미 용서되었다” 혹은 “나는 구원 받았으니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 때문에 윤리적 문제가 생겨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약간 핀트가 어긋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파 사람들도 “내가 이미 구원 받았다”라는 사실이 자신이 비윤리적으로 살아도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정통 교단의 비판 이후 그들도 회개 문제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기도 합니다.
 
 오히려 저는 그들의 윤리적 문제는 그들이 궁극적 목표를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그들의 배타성 및 폐쇄성은 “나는 이미 구원 받았다”는 생각을 통해 정통 교단과 분리된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미 얻은 구원”은 배타성을 통해 범죄가 일어나도 은폐될만한 환경을 제공하는 원인이 됩니다.
 
 


 

결론


 기독교는 자신의 궁극적 목표를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내 죄가 용서되었다”라는 자기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수용소가 아닙니다. 내가 천국에 가느냐 마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천국은 정말 끔찍한 곳일 것입니다. 이런 무서운 사람들을 양산하는 것이 기독교의 목표가 된다면 기독교는 오로지 성장에만 집중하는 무서운 집단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늘리기 위해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재창조된 사람들이어야 합니다(엡 2:10). 기독교는 “어떤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변화를 맞은 사람”을 늘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들부터가 사회의 유익을 위해 활동함으로써 변화된 사람임을 보여야 하며, 그것을 보는 기독교인들 역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누군가를 전도할 때에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천국 간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사람을 늘리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면, 이런 사람의 인생은 오로지 맹목적인 전도로만 뒤덮일 것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이 전도한 사람 역시 이와 동일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전도 되었다는 사실”로 기뻐할 것이며, “다른 사람을 전도한다는 사실”로 즐거워할 것입니다. 또한 또다른 “전도하는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이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의 핵심은 “서로 사랑하고 구제하라”가 아닙니다.
 
 이들의 모든 시간과 비용은 이것 만을 위해 교회 내로만 모여들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처음 이것을 알려준 사람이 이것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 불리며 많은 존경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를 것입니다. 구원파 신도들은 이 사람이 사회에 유익을 끼치지도 않고, 불쌍한 사람의 실제적 어려움을 도와주지도 않으며, 자신들을 착취하고 있는데도 관망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파 신도들은 “천국 갈 사람”을 늘리는 것만이 핵심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 외의 다른 것은 부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소위 “하나님의 종”이 “복음 전파”를 위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신도들은 이에 대해 넘어가게 됩니다. 막대한 물질적 자금이 교회 내에 축적되고, 신도들은 사업의 확장을 위해 동원되거나 합창단 연습을 위해 학대 받습니다. 혹은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착취 당합니다. 성도들은 가난해도 된다. 그러나 교회는 부유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점점 퍼져 나갑니다.
 
 만약 우리가 “내가 구원 받았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을 늘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불쌍한 사회의 이웃을 위해 일하지 않으면서 “복음 전파! 전도!”를 부르짖는 모든 목회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상처 받은 사람, 마음이 가난한 사람, 절망 속에 부르짖는 사람을 무시하고 자신의 배를 채우거나 교회를 키우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도자들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천국 갈 사람을 늘려야 한다!”가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늘려야 한다!”를 궁극적 목표로 설정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그 사람은 주변의 불쌍한 이웃의 어려움을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파가 후자가 아닌 전자에 집중하는 것은 그들의 윤리적 실패가 어쩌면 필연적인 것임을 암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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