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침례회(생명의말씀선교회)의 주장대로 일반 교단들이 복음에 대해 잘 모르는가?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적다 등등)

대한예수교침례회에 대하여

대한예수교침례회(생명의말씀선교회)의 주장대로 일반 교단들이 복음에 대해 잘 모르는가?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적다 등등)

바잇 카탄 2024. 5. 2. 17:46

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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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예수교침례회(생명의말씀선교회, 이하 대침) 분들이 대침을 떠나 일반적인 교단으로 가지 못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다른 교단들이 가르치는 구원에 대한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는 일반 교단들이 오직 믿음으로 인한 구원이 아닌, 과거 죄는 용서 받았으나 미래의 죄는 용서받지 못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회개해서 계속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즉 일반 교단들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여기지 않고 추가적으로 무언가를 행하여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은 행위 구원이므로 잘못된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번 글에서는 과연 일반적인 교단들에서 가르치는 복음의 내용,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 개인의 구원과 관련된 "칭의"에 대한 부분이 정말 오직 믿음이 아닌 행위 구원의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는가를 확인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대침 분들과 대화할 때마다 일반 교단들에서도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고 가르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침 분들은 제 말을 믿지 않고 자기가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나, 일반 교회에서 나와 대침을 다닌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믿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타 교단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찾아볼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내 주변이라는 것은 상당히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이런내 주변을 기준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의내 주변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설령 같은 주제라고 해도 정상적인 소통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은 소위끼리 끼리모이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비슷한 공동체에 모일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내 주변은 대개 자신과 비슷한 사상과 신념을 가졌거나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로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대침에 어떤 사람이 장로교에 대해 궁금해하며 교회 내에서 정보를 모은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대침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존 교단에 만족하지 못했거나 혹은 정통 교단이라도 이단성을 가진 비정상적인 교회를 다닌 경험이 있어서 대침에 출석하게 된 경우들이 많을 것입니다. 기존 교단에서 정상적인 교회를 다니거나 평범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대침의 교리를 특별히 따라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정상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한국 교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대침에 모이기 시작하면서 대침 내부는 이런 사람들로 채워집니다.

 이제 장로교에 대해 정보를 얻으려는 대침 사람은, 자신의 교회 안에 과거에 장로교를 다녔다가 안 좋은 경험을 하거나 이단성 있는 이상한 교회에 다닌 사람들을 만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장로교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전달할 것입니다. 이것은 감리교를 다녔다가 대침에 빠져들게 된 사람이라도 동일할 것입니다. 그래서 대침 사람들은 이런 일반적인 교단들을 다녔다는 사람들에게 얻은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정통 교단에 대한 이미지를 구성합니다.

 실제로 대침의 설교단에서는 일반적인 교단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들의 교단을 제외하고는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드물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교단들에서는 복음을 가르칠 때 과거의 죄는 사해졌다고 하면서 앞으로 짓는 죄는 끊임없이 회개를 해서 새로 용서받아야 천국에 간다고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아마 이렇게 설교하는 목사가 경험한 소위일반 교단”(그런데 정말 일반적인 교단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이 잘못된 곳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신도들은 계속해서 이런 개인의 주관적 경험이 들어 있는 설교에 노출되다보니, 점점 일반 교단들의 대부분이 이런 교리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순수하게믿음으로구원을 얻는 것이라 가르치는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이런내 주변을 통해 얻은 정보를 렌즈 삼아 바라본 세상은 왜곡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주관적 이미지가 됩니다. 누구든지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다면, 이것이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주관적 심상들을 시작으로 대침 분들과 대화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주관적 심상인내 주변에서 벗어나 실제로 객관적인 영역인 각 교단이 채택하고 있는 신앙고백이나 교리 헌장 등에서 복음이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는지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장로교단이나 감리교단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교리적 내용에서 과연 행위 구원을 가르치고 있는지, 과거의 죄는 사해졌으나 미래의 죄는 아니라는 식의 가르침이 있는지, 그리고 구원을 받을 때에 오직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을 주장하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뒤에야, 대침 분들은 일반 교단에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비교적 근거 있고, 객관적인 시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교의 일반적인 교리적 입장에 대하여


 한국 기독교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교단은 장로교단입니다. 그러므로 대침 분들이 한국 교회 대부분이 행위 구원을 가르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마 장로교단을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제가 대침에 있었을 때에 장로교에 대해서 가장 부정적이었습니다. 착한 일 하면, 교회에 잘 나오면 천국 간다고 가르치는 교단이 장로교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과거의 죄는 사해졌지만 미래의 죄는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곳도 장로교라고 일반적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장로교가 구원, 곧 의롭다함을 받는 칭의를 인간 개개인이 어떻게 얻느냐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본다면 적어도 대침이 말하는 한국 교회 대부분이 가진 복음에 대한 시각이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살펴볼 때에는 제가 위에서 언급한바, "내 주변" 혹은 "내 경험"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 교단이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내용이 그들이 무엇을 따르는가를 설명할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장로교단은 한국에서 정말 많은 분파가 있습니다만, 이 중 가장 대표적이고 또 교세가 큰 5개의 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 통합, 합동, 백석, 고신, 대신의 신학적 입장을 살펴본다면 한국에서 가장 큰 교세를 형성하고 있는 장로교단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로고
장로회 통합 로고

 

 

 장로 통합의 경우에는 그들 교단의 총회 사이트에 총회 헌법 제 1편에서 교리에 대한 부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2. 성경 또는 기록된 하나님 말씀이라는 명칭 하에 현재 신구약성경의 모든 책이 포함되어 있다. 그 책은 다음과 같다: 구 약 창세기,열왕기상,전도서,오바댜,출애굽기,열왕기하,아가,요나,레위

www.pck.or.kr

 

 장로 통합 측의 총회 헌법 교리편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부 사도신경

제2부 신조

제3부 요리문답

제4부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리문답

제5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부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제7부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이 중 사도신경은 거의 모든 대침 분들이 익히 잘 알고 있으니(물론 비판적이지만) 넘어가도록 하고, 신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장로 통합의 제 2부 신조에서는 9항에서 인간이 구원을 얻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오직 세상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는 온전한 구원을 값없이 주시려고 명하시기를, 너희의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믿고 의지하여 본받으며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을 복종하여 겸손하고 거룩하게 행하라 하셨으니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여기서 "값없이"의 부분과 "믿고 복종하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에서 알 수 있듯이, 장로 통합 측은 분명하게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복종"을 언급한 것 때문에 혹시 이것이 행위로 구원을 얻으라는 설명이 아닌가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로 통합의 신조가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여 설명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의롭다함을 얻음, 곧 칭의를 어떻게 얻는가에 대해서 제 3부 요리문답 33에서 더욱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문 33. 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답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동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그가 보시기에 의로운 자로 우리를 받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기 때문이고 그리고 오직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롬 3:22-24, 행 10:43, 고후 5:19, 롬 3:26, 5:19-21, 5:1"

 

 즉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이 장로 통합이 따르는 가르침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합 측은 과거의 죄는 믿음으로 속죄되었지만, 미래의 죄는 그렇지 않다라고 가르칠까요?

 

  29-31은 이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문 29.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가 값주고 사신 그 구속에 참여자가 됩니까?
답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자가 되는 것은 그의 성령이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써입니다.
-요 1:12-13, 16:7-8, 딛 3:5-6"

 

"문 30.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구속을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하십니까?
답 성령께서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심은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시고 또 우리를 효과적으로 불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심으로써 하십니다.
-엡 2:8, 2:18-20, 요 6:37-39"

 

"문 31.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무엇입니까?
답 효과적인 부르심이란 하나님의 영의 사역인 바, 우리의 죄와 비참을 확실히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시며, 우리의 뜻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는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설복하시며 또한 그렇게 할 힘을 주십니다.
-요 16:8, 엡 1:18, 계 3:17-18, 행 26:18, 겔 11:19, 빌 2:13"

 

 여기서 칼빈의 개혁주의를 따르는 일반적인 시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에게 적용될 때에는 효과적인 부르심에 의하여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작용하여 믿음을 불러일으킨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효과적인 부르심"은 어떤 사람의 행위 혹은 믿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선택(예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즉 개혁주의를 따르는 장로교는 행위 구원은 고사하고, 인간의 믿음 등을 포함하여 그 어떠한 공로도 구원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배제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행위에 대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4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리문답 중 문 4에서는 성경의 주된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경은 불순종으로 타락하여 비참하게 된 인간들(창 3:8, 19; 마 25:41)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사해져 구원받게 되며(행 16:31), 이 구원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과 피조물이 새롭게 됨을 가르치는 책입니다(요 20:31).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 구현의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막 1:15). 이에 있어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구원과 믿음의 길에 대해 설명하며,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들을 지킬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은혜의 수단이 되는 말씀과 기도와 성례를 통해 주님의 명령을 준행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리문답에서는 분명하게 죄가 사해져 구원받는 것은 "믿음으로"라고 명시합니다. 이곳에서도 행위를 통해 추가적으로 죄를 사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신자들이 행하는 행위들은 모두 "믿음 안에서" 수행할 힘을 얻는다고 명시함으로써 행위를 통해 얻는 구원과 예리한 구분선을 두고 있습니다.

 

 제 5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제 11장 "칭의에 관하여"에서도, 믿음은 의롭다 함을 얻는 유일한 도구라고 명시합니다:

"2.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얻고 그에게 의지하는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도구이다(요 1:12, 롬 3:28, 5:1). 이 믿음은 의롭게 된 사람 안에 단독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른 모든 구속적 은사와 함께 있다. 이 믿음은 또한 죽은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약 2:17, 22, 26, 갈 5:6)."

 

 그렇다면 과거의 죄는 믿음으로 사해졌지만, 미래의 죄는 행위를 통해 사해져야 한다고 가르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칭의를 얻는 인간의 모든 빚을 전부 갚아주었다고 말합니다:

"3. 그리스도는 복종과 죽음을 통해서 의롭게 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빚을 전부 갚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의를 실제로, 충분히, 그리고 적합하게 만족시키셨다(롬 5:8­-10, 19, 딤전 2:5-­6, 히 10:10, 14, 단 9:24, 26, 사 53:4-­6, 10­-12).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고(롬 8:32), 그들 대신에 그리스도의 복종과 만족이 그들의 복종과 만족을 대신해서 용납되었다(고후 5:21, 마 3:17, 엡 5:2). 이것은 그들 안에 무슨 가치 있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값없이 용납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칭의는 온전히 자유로우신 은총에서 온 것이다(롬 3:24, 엡 1:7). 그리고 죄인들의 칭의 속에서 하나님의 엄밀한 의와 풍성한 은총은 더욱 빛난다(롬 3:26, 엡 2:7)." 

 

 또한 하나님께서는 칭의를 얻은 인간의 죄를 지속적으로 용서하시며, 이런 사람들은 칭의에서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5. 하나님은 의롭게 된 사람들의 죄를 계속적으로 용서하신다(마 6:12, 요일 1:7, 9, 2:1-­2). 그들은 칭의의 자리에서 절대로 떨어질 수는 없으나(눅 22:32, 요 10:28, 히 10:14)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성적(父性的)인 노(怒)를 살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들이 자신을 낮추고,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믿음과 회개를 새롭게 하기 전에는 그들은 회복된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볼 수가 없다(시 89:31-­33, 51:7-­12, 32:5, 마 26:75, 고전 11:30, 32, 눅 1:20)."

 

 이제 제 16장 "선행에 관하여"에서 그 어떠한 행위로도 죄 용서나 영생을 얻을 수 없다고 못 박음으로써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합니다: 

"5. 우리는 우리의 최선의 행동들을 통해서도 죄의 용서나 하나님의 손에 있는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그것들과 장차 받을 영광 사이에 큰 불균형이 있고, 또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무한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선행으로써 우리가 도움을 얻는다든가 전에 범한 죄의 빚을 탕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롬 3:20, 4:2, 4, 6, 엡 2:8-­9, 딛 3:5-­7, 롬 8:18, 시 16:2, 욥 22:2-­3, 35:7­-8). 가령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의무를 행한 것뿐이요, 우리는 무익한 종에 지나지 않는다(눅 17:10). 그것이 선한 행동이라면 그것이 성령에서 나왔기 때문이다(갈 5:22­-23). 그런데 그러한 행동이 우리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 가지 약점과 불완전성으로 심히 더럽게 되었고 또한 그런 것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그것은 도저히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견딜 수 없다(사 64:6, 갈 5:17, 롬 7:15, 18, 시 143:2, 130:3)."

 

 제 6부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에서도 제 06장 "구원"에서 믿음으로만 값없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4. 사람은 믿음으로만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동시에(롬 3:24, 8:1),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된다(요 1:12, 롬 8:16­-17). 그리스도인은 칭의(稱義)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성화의 생활이 계속된다(롬 8:4­-6). 칭의(稱義)의 은총은 일회적이나 성화의 생활은 일생을 통하여 계속된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은 세상의 마지막 날인 그리스도의 재림 때 부활에서 성취된다(롬 8:23-­25). 그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질 것으로 모든 성도가 굳게 지녀야 할 최후의 소망이다."

 

 끝으로, 제 7부 21세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앙고백서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서 “생명의 부여자시요,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와 영광을 받으시는”(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381) 성령님을 이 땅 위에 보내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역,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게 하심으로써 인류와 우주만물을 구속하시고, 새 창조를 약속하셨다고 믿는다(계 21:1-6).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성령님을 이 땅 위에 보내셨고, 특히 교회에게 성령을 부어 주사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믿는 사람들은 죄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성령님의 역사로 이 복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야)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회개에 이르고(롬 3:21-26, 롬 6:1-23), 성화와 영화롭게 됨에로 나아가며(롬 8:30), 영원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게 된다. 성령님의 교제케 하심과 감화와 감동, 그리고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화해사역은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며, 이들은 복음에 대하여 믿음, 소망, 사랑으로 반응한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로 이 땅 위에 그리스도의 몸이요(엡 1:23), 하나님의 백성이요(벧전 2:9-10, 고전 6:16), 성령님의 전(고전 6:19, 엡 2:21)인 교회를 세우셨다."

 

 통합의 교리 헌법에 있는 내용들 중 복음의 기본적인 내용에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혹 행위로 구원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러한 것을 찾지 못했으며, 오히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내용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장로 통합의 총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고 누구든지 제가 올려드린 링크를 통해 접속하여 열람하실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하실 분들은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위의 내용들로 보건대, 장로 통합 측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기준, 장로 통합은 전국에 대략 9000여 개의 교회와, 270만 명 이상의 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로고
장로교 합동 로고

 

 다음으로 총신대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장로 합동의 교리 헌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합동측의 총회의 헌법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본 총회의 헌법은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 시대(1901∼1906)에 다음과 같이 헌장에 관한 준비를 하였다. 1901년 만국장로회 헌법 번역위원을 선정하였고 1902년에는 헌법 준비위원과 노회 규칙위원

gapck.org

 

 합동의 교리 헌법은 신조, 소요리문답, 대요리문답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합동측의 "신조"는 통합 측의 "신조"와 동일하며, "소요리문답"은 통합 측의 "요리문답"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합동 측의 "대요리문답"만을 살펴보겠습니다.

 

 대요리문답의 문 70은 칭의란 인간 안의 어떤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것으로 인한 것이라 설명합니다: 

"의롭다 칭하심이란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행위이니 이것에서 그들의 모든 죄를 자하시고 자기 목전에 그들 자신들을 의로운 자들로 받으시고 여기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 안에 공작되었거나 그들이 행한 어떤 일로 인한 것이 아니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충분한 만족이 하나님에 의해 그들에게 전가되고 또한 믿음으로만 받아 드린바 됨으로 인한 것이다.
(롬 3:22, 24, 25, 롬 4:5, 고후 5:19, 21, 롬 3:22, 24, 25, 27, 28, 딛 3:5, 7, 엡 1:7, 롬 5:17∼19, 롬 4:6∼8, 행 10:43, 갈 2:16, 빌 3:9)"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 곧 은혜의 행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순종하심과 죽으심으로써 의롭다 칭하심을 받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정당히 참으로 충반하게 만족시켰을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요구하셨을 만족을 보증에게서 받으시는 것과 동시에 자기의 독생자를 보증으로 예비하시어 그의 의를 그들에게 돌리시고 그들의 의롭다 칭함을 위하여서 역시 자기의 선물인 신앙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시니 그들의 의롭다 칭함은 그들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이다.
(롬 5:8∼10, 11, 딤전 2:5∼6, 히 10:10, 마 20:28, 단 9:24:26, 사 53:4∼6, 10∼12, 히 7:22, 롬 8:22, 벧전 1:18∼19, 고후 5:21, 롬 3:24∼25, 엡 2:8, 1:7)"

 

 또 죄 사함 역시 이러한 믿음으로 받습니다: 

"의롭다 칭하게 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과 말씀으로 말미암아 죄인의 마음속에 이루어지는 구원하는 은혜니 그가 이로써 자기의 죄와 참상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회복하기에 자신이나 다른 모든 피조물도 무능함을 확신케 될 때에, 복음의 약속의 진리를 승인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 안에 있는 그의 의를 받아 의지함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목전에 의로운 인물로 수납되고 인정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히 10:39, 고후 4:13, 엡 1:17∼19, 롬 10:14, 17, 행 2:37, 16:30, 요 16:8∼9, 롬 5:6, 엡 2:1, 행 4:12, 엡 1:13, 요 1:12, 행 16;31, 10:43, 빌 3:9, 행 5:11)"  

 

 죄인이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은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닙니다: 

"신앙이 하나님 목전에서 죄인을 의롭다 칭하게 함은 이를 항상 동반하는 다른 은혜 때문도 아니고 이것의 열매인 선행 때문도 아니며 신앙의 은혜, 혹은 이것의 어떤 행위가 그의 의롭다 칭함을 위하여 그에게 전가된 것과 같은 것도 아니고,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 적용하는 기구뿐인 것이다.
(갈 3:2, 롬 3:28, 4:5, 10:10, 요 1:12, 빌 3:9, 갈 2:16)"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이들이 미래의 죄를 위해서 행위로 노력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도록 보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사랑, 그들에게 견인을 주시려는 그의 작정과 언약, 그들의 그리스도와의 나눌 수 없는 연합, 그들을 위한 그의 계속적 대도, 그들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과 씨로 인하여 참 신자들은 전적으로나 종극적으로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보존된다.(렘 31:3, 딤후 3:9, 히 13:20, 삼하 23:5, 고전 1:8∼9, 히 7:25, 눅 22:32, 요 3:9, 요일 2:27, 렘 32:40, 요 10:28, 벧전 1:5)"

 

 

 재밌는 것은 이전에 제가 쓴 글에서 대침이 "자기 구원의 확신"을 믿음의 대상에 놓고 이것으로 신앙을 시작한다고 지적한 바가 있었는데,[각주:1] 대요리문답의 문 81 역시 저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합동의 대요리문답은 "구원의 확신"은 본래 신앙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고 명시합니다:

"은혜와 구원의 확신은 본래 신앙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므로 참 신자들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며 혹은 이러한 확신을 누린 후에라도 악성, 죄, 시험, 배반으로 인하여 확신이 약화하고 중단되기도 하나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고 붙드시므로 결단코 전적 절망에 빠질 수 없게 하신다.(엡 1:13, 사 50:10, 시 88:1∼18, 시 77:1∼12, 갈 5:2, 3, 6, 시 51:8, 12, 시 22:1, 요일 3:9, 욥 13:15, 시 73:15, 23, 사 54:7∼10)"  

 

 그러므로 장로 합동측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고 있으며, 행위 구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한 구원의 확신을 신앙의 본질적 요소로 여기지 않으며, 이것이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장로 합동은 대략 11000개의 교회와 268만 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 로고
장로교 백석 로고

 

다음으로 장로 백석의 교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장로 백석은 총회 헌법 제 2편에서 교리를 설명합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백석)

총회소개, 조직, 주소록, 헌법, 규칙, 사업, 자료, 증명서, 커뮤니티

www.pgak.net

 

 총회 헌법의 교리는 "제 1부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조", "제 2부 성경 소요리문답", "제 3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1부 대한예수교장로회 신조"는 위의 통합 측과 합동 측의 "신조" 내용과 동일합니다. 이것이 1907년에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장로교의 주요 교단들이 공유하는 내용인 것 같습니다

 

 또 "제 2부 성경 소요리문답" 역시 통합 측과 합동 측의 "요리문답" "소요리문답"과 동일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 3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위의 두 교단과 동일합니다.

 

 따라서 장로 백석 역시도 통합, 합동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행위 구원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 장로 백석은 대략 7300여 개의 교회와 150만 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로고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 로고
장로교 고신, 대신 로고

 

고신대신 측은 상세한 교리적 입장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총회 홈페이지에서 이들이 어떤 신학적 견해를 따르고 있는가를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헌법 전문

1)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순결한 신앙을 보존하며, 이 신앙에 대한 모든 도전과 진리를 왜곡하는 사상을 철저히 경계하고 배격한다. 2) 우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우

www.kosin.org

 

대신총회

 

pckd1961.org

 

장로 대신의 교회 헌법 pdf 파일입니다:

대신헌법-+교회법+[2019.2.8].pdf
0.49MB

 

 고신 측은 자신들의 신학적 색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 중세 로마교회가 이 초대 교회의 신앙에서 탈선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개혁자들을 일으켜 올바른 신앙을 회복하고 교회를 개혁하게 하셨다.

5) 우리는 특별히 역사적인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른다. 이 전통은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 된 종교개혁의 소산들을 사상적으로 체계화하고, 그 가르침을 성경적으로 더 철저하게 발전시킨 칼빈의 신학적 입장을 의미하며, 이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수되었다. 이 신조들은 성경 말씀을 따라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께 대하여 믿어야 할 바가 무엇이며, 또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성도들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밝혀주고 있다."

 

 대신 측의 신학적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4) 우리의 신학은 개인신앙의 주관적 학적 표명(表明)이 아니라 역사적 기독교회의 교회성을 본질로 하는 교회신조(敎會信條)에 의한 객관적 학적 석명(釋明)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칼빈주의를 표방(標榜)한다. 이는 우리의 신학이 칼빈 한 사람의 개인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의 신학적 입장이 성경의 계시진리를 역사적 기독교회가 신조 또는 교회의 신학자들의 저술형태로 고백해 온 체계적 진리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학은 역사적 기독교회의 공동신조(共同信條)를 비롯하여 어거스틴, 루터, 칼빈, 베자, 16·17세기 개혁파 신학자들, 16·17세기 개혁파교회의 신조들, 19세기와 20세기의 개혁파교회 신학자들에 의해 변증, 변호, 보존되어 온 역사적 기독교회의 정통적 입장이다."

 

그러므로 위 두 교단의 경우에도 통합, 합동, 백석과 마찬가지로 개혁주의적 입장, 즉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인간의 행위나 공로가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지지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18년 기준으로 고신은 대략 2000여 개의 교회, 45만 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으며, 대신은 대략 1200여 개의 교회와 6만 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 교회의 대부분을 구성한다고 평가받는 한국 장로교의 주요 5대 교단은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외의 추가적인 인간의 행위 등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진리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감리교의 일반적인 교리적 입장에 대하여


 한국 교회를 구성하는 교단 중 가장 큰 곳이 장로교라면, 그 다음으로는 감리교가 규모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보이는 감리교는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 소속입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로고
감리교 로고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홈페이지에서 감리교단이 지지하는 교리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1편 역사와 교리(2장)

제1편 역사와 교리(2장) 제 2 장 교 리 제 1 절 신앙과 교리의 유산 【16】 기독교대한감리회는 모든 개신교인들의 전통적 기독교 신앙을 함께 고백한다. 이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를

kmc.or.kr

 

 제 1절 신앙과 교리의 유산 중 "종교의 강령" 제 9조에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제 9조 사람을 의롭게 하심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오직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음이요, 우리의 행한 것이나 당연히 얻을 것을 인함이 아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 하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위로가 넘치는 도리이다."

 

연이어 제 10조에서도 인간의 선행은 죄를 없게 하지 못한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 10조 선행
선행은 비록 믿음의 열매요, 또한 의롭다 하심을 따라 오는 것이로되 능히 우리의 죄를 없이하지 못하며 또한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위엄하심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하고 기뻐하시는 바요, 참되고 활발한 신앙으로 좇아 나오는 것인즉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아는 것 같이 선행을 보고 그 활발한 신앙이 있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특별히 감리교는 제 20조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단번에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 20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한 번 제물이 되심 
그리스도께서 한 번 제물로 드리신 것이 온 세계의 모든 죄, 곧 원죄와 범죄를 위하여 완전한 구속과 화목과 보상이 되었은즉 그 밖에 다른 속죄법이 없다."

 

 따라서 감리교 역시도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말하고 있으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것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2022년 기준 감리교는 대략 6600개의 교회와 120만 명의 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사실 지금 글을 쓰면서 약간의 현타(?)를 느끼고 있습니다. 왜 이런 당연한 소리를 장문의 글로 써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로교, 감리교 등은 모두 오직 믿음을 통해 얻는 의로움이라는 올바른 복음을 가르치고 있으며, 행위 구원을 가르치거나 예수님의 속죄의 효력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위의 내용들은 이것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따로 글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일반 교단들은 복음 내용을 모르고 잘 가르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이상한 망상을 믿는 대침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대침에서 주장하는 이런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수용하고서 간단한 검색이나 조사 조차 하지 않습니다.

 

 혹은 자신이 경험했던 이상한 교회를 한국 교회 전체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착각하거나, 대침 내에서 일반 교회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한국 교회를 보편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고 단정해버립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의 길이 다른 교단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 여깁니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을 대침만이 제대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이 당연한 진실을 외면한 채 심지어 찾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무작정 맹신하고 일반 교단들은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는 곳이 적다고 생각하는 망상을 깨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주 정직한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위의 각 교단들의 교리 헌법을 읽은 뒤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복음을 알고 있으며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추측하기로는 아마 많은 수의 대침 분들은 위의 내용을 읽고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합리적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대침이 그렇게 주장했고, 자신들은 그것을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위의 내용들은 교단들의 교리 헌법일 뿐이고, 실제 각 교회들은 위의 내용들을 모르거나 잘 가르치지 않는다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이 경우 각 교회들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설교들을 들어보면 될 일입니다만, 이것조차 하지 않겠죠...)

 

 그런데 그런 분들이 들고 오는 것은 또다시 "내 주변"이라는 협소한 경험들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주관적 경험이나 증언담이 한국 교회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맹신해버립니다.

 

 사람이 이 단계까지 가버리면, 사실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우리는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 분들이 원하는 것은 "진리"나 "진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안락한 거짓"이 이분들의 바람일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사도행전 7장 5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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