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장 9절 묵상. (렘 17:9) Meditation on Jeremiah 17:9 (Jer 17:9)

성경 묵상

예레미야 17장 9절 묵상. (렘 17:9) Meditation on Jeremiah 17:9 (Jer 17:9)

바잇 카탄 2020. 9. 4. 20:27

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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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예레미야 17장 9절.

 

렘 17:19 히브리어 원문
렘 17:19 히브리어 원문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만물은 원문상 모든 것을 의미한다. 또 해당 본문에서 거짓되고심히 부패한 것이 지칭하는 바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더 나은 번역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모든 것보다 거짓된 것은 사람의 부패한 마음이다.”

 여기서 사람의 마음은 두 가지의 주요 특징을 지닌 것으로 표현된다.

1. 그것은 모든 것보다 거짓된, 즉 사기적인, 속이는 속성을 갖는다.
2. 그것은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부패한 속성을 갖는다.

 이 두 가지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 만물보다”(믹콜)에 주목하라.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악함을 갖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이 마귀나 그의 무리들인 귀신들보다 인간의 본성이 더욱 악하고, 상대적으로 대비되는 마귀와 그 무리들은 인간의 본성보다 더 적은 정도의 악함을 갖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마귀와 인간의 본성은 어떤 의미에서는 서로 중요한 상관관계를 갖고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 형상 자체는 그가 타락할 당시에 잃어버리지 않고 보존된다. 다만 그의 악함은 그 하나님께로부터 기원한 수단과 기관들을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향해 사랑을 표현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철저하고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방향으로 사용된다는 차이에서 생긴다.

 반면에 마귀와 그 무리들은 하나님의 형상과는 다른 존재들이다. 그들이 인간이 받은 것과는 다른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성경이 인간을 유일한 어떤 존재로 설정한 것으로 미뤄볼 때 더욱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능력과 주어진 환경들과 성품들과 인격과 자아와 지성적인 기관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지금 비교하고 있는 마귀와 공통점을 갖는다. 그것은 정도와 상관없이 본래적으로 악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비록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존재이지만, 인간보다 덜 악하지 않다. 오히려 그 존재는 존재라고 칭하기 어려울 만큼 하나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이 부패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이해하여야 적절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고 태어난다는 점에서 선한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들을 부여받는다.이 능력들은 그 자체로 지극히 선한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이 같은 능력들을 하나님을 찬양하거나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데에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을 대항하고 그분께 반역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칼빈이 말한 바, 우리 인간들은 자연인 상태에서는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 하나님을 모욕한다. 우리는 모든 작용들을 총 동원하여 하나님을 모욕하고 그분을 불쾌하게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럴 의도가 없었다라고 변명하기에는 이미 자발적으로 매순간마다 이어지고 있는 비극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부패함은 심히부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죄를 짓는 데에 사용하는 그 원료 자체가 바로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신 것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들로 죄를 범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몸, , , 입술, , 생각, 지성, 감정, 의지, 욕구, 마음을 수단으로 죄는 범해진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이 하나님께 모욕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것으로 그분을 거역한다는 이 사실에 기반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간의 이 심각한 부패의 본성은 거짓된 것인가? 먼저 거짓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의 단어는 “아콥”으로, “기만적인”, 혹은 속이는의 뜻이 가장 알맞다. 이 문구가 여기서 나온 것의 이유를 알려면 먼저 171~2절을 살펴봐야 한다.

171~2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그들의 자녀가 높은 메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이 구절의 전반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먼저 그들의 마음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진 것이 유다의 죄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에게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죄라는 것의 속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율법이 없으면 설명할 수 없는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죄는 개념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유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있고 그 양심의 소리에서 그를 정죄하고 있음은 그가 매번 속죄제와 번제와 속건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그 자신을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존재,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뒤에 오는 그들의 자녀가 생각하도다는 이 같은 개념을 더욱 강조한다. 이것은 앞의 유다의 상황인 하나님의 언약적 백성으로 자신을 간주하는 것과 대비되는 행위를 그가 행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대비시켜 그의 악행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시 9절로 돌아와서, 본문의 거짓되다는 것은 이 같은 의미에서 이해해야 좋다. ,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마음의 선한 영향이 아닌 의식과 장로들의 유전과 예식 및 외적인 것들로 대체하였다. 이들은 이것이 바로 언약이라 여겼고, 언약의 본질이라 생각하였기에, 그들이 하나님의 토라를 지키고 더 정확히는 그 외적인 것들을 붙들고 있는 한 자신들은 언약에 속하여 어떤 죄를 짓든 그것이 배교하는 것만 아니라면 하나님의 자비로 용서될 수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부패한 본성과 그 실제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안도감은 바로 선민적 사상에 기반하고 있는데, 아브라함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민으로 택하시고 자비로 대하시기 때문에 사실상 유대인으로 태어나 할례를 받고 그 일원이 된다면 그는 언약 백성이고, 어느 정도의 죄는 용서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사상적인 기만을 여기서 지적하신다. 그들의 부패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들은 외적인 성전과 토라와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다른 신들도 겸하여 섬겼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만한 것이며 은밀하게 속일 수 있다고 여긴 극악무도한 범죄이다.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 뒤에 10절에서는 그 사람의 속이는 마음을 아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인간은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이것은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엄밀하게는 자신의 마음조차 알 수 없음을 뜻한다.

 우리 각자는 마치 유대인들이 그랬듯이 기만적인 방향으로 부패한 본성을 드러낸다. 기독교인들은, 나를 포함하여,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분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신의 온 본성의 기관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다른 것을 섬기는 데에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은 흔히 자기 자신이다. 우리 각자는 대부분 자신만을 위해 산다. 여기서 우리는 기만을 발견한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을 위해 산다고 하는 우리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속으로는 아세라 우상을 생각하듯 죄악 된 생각과 행동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누가 아는가? 어떤 때에는 우리 스스로 발견하고 이러한 악행을 그만하도록 통제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우리는 이것들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더 정확히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의 안위, 자신의 정신적인 평강을 위해 하나님을 섬길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는 온갖 그런 것들로 점철된 콘텐츠들을 무한히 생산하는 양상을 띤다.그러나 우리들이 스스로를 아무리 속이고 스스로를 아무리 신실하다 여길지라도,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끝 날에 그분의 백보좌 심판대에서 드러날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과연 누구인가.

 

 

<이단 생활!>

 

이단 생활! -프롤로그- (기독교 이단 웹툰)

기독교 이단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일상(?) 웹툰입니다. 이단 생활! -1화- (기독교 이단 웹툰) littlebiblicaltheolog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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