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12-13절 묵상 (빌 4:12-13) Meditation on Philippians 4:12-13

성경 묵상

빌립보서 4장 12-13절 묵상 (빌 4:12-13) Meditation on Philippians 4:12-13

바잇 카탄 2023. 11. 27. 00:59

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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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2-13절

로고스 프로그램 빌 4:12-13 헬라어 원문
빌 4:12-13 헬라어 원문
빌 4:12-13 헬라어 원문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는 이 말은, 그가 자신의 사역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과연 바울을 본받으려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무엇인가를 깊게 숙고하도록 만든다. 이 구절은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깊은 감동과 힘과 격려와 위로를 건넨 말이다. 우리가 생존해 있는 동안 우리의 상황은 좋아지기도 하고 반면에 나빠지기도 한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보호하심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온갖 좋거나 좋지 않은 일들을 마치 롤러코스터 타듯이 불안정하게 겪고 있다는 점은 큰 아이러니이다.
 
 그럴 때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쉼 없이 달리는 한 사도의 위대한 고백을 상기시킨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굳게 서서 담대하게 온몸으로 모든 것을 겪어내는 이 사람은 분명 매우 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어떻게 이런 거대한 정신력을 지니게 되었는가? 12절의 그의 말은 마치 그가 독자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이 비결을 체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뒤에, 그는 자신의 손에 힘을 쥐어주는 그분이 바로 자신의 비결임을 나지막하게 고백한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도움을 주려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자신이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11절). 그리고 그 자족하는 법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 12절과 13절이다. 바울은 먼저 "안다(οἶδα; 오이다)"라고 말한다. 즉 그에게는 어떤 지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바로 "비천에 처하는 것(ταπεινοῦσθαι; 타페이누스따)"과 "풍부에 처하는 것(περισσεύειν; 페리쎄우에인)"이다. "낮아지다, 겸손하다"를 의미하는 "타페이노오(ταπεινόω)"는 본래 "산이나 언덕을 평지로 만드는 것"을 일차적으로 의미한다. 그리고 비유적인 의미로 어떤 한 인간을 겸손히 낮추고 굴욕을 주는 것, 즉 지위와 관련된 비하에 처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페리쎄우오(περισσεύω)"는 "남다, 남아있다", 따라서 "넉넉하다, 부유하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두 가지의 비결을 알고 있는데, 하나는 비천하게 되기이고, 다른 하나는 부유하게 되기이다(둘 모두 부정사가 사용됨).
 
 11절에서 "자족"이라고 말하는 것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여기서 단순히 정신적인 면에서 비결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바가 나는 실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단지 어떤 상황이든 자신은 평온한 마음을 얻는다던가, 별 고민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 진지하게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낮은 지위에 처하는 것도,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가 정말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이미 1차와 2차 선교 여행을 통해 여러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또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우리는 바울이 많은 고생을 겪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지만, 그가 부유해지는 비법을 안다는 점은 잘 모른다. 반면에 바울이 2차 선교에서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그는 상당한 수익을 올릴 기술을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대략 1년 8개월 정도 체류하였는데, 그중 1년 이상은 가죽 공예를 통해서 자신이 사역할 돈을 스스로 충당했다. 재밌는 점은 고린도 지역이 워낙 상거래가 활발한 곳이었다 보니 바울의 이런 활동은 꽤 괜찮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기술을 습득한 자들의 경우 장사를 통해 이윤을 남기기에 고린도 지역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따라서 바울이 만약 경제적인 의도를 가졌다면 남은 인생을 비교적 편하게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고린도에서 볼 일이 사실상 끝나자마자 이런 기회를 포기했다.
 
 동시에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가죽 장사를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이 다른 순회 철학자들, 연설가들과 같이 품위있는 처신을 하는 높은 지위에 걸맞은 사람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린도의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은 바울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길 원했던 것 같다. 바울이 장사를 통해 자신의 생활비를 벌었던 것은 그들에게 큰 부끄러움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만 따져도 비천한 지위에 있는 것에도, 경제적인 고수익을 올리는 것에도 익숙한 편이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하다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소위 '구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바울이 자족한다고 말한 것을 단순히 그가 정신적으로 만족한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는 빌립보 교인들의 물질적인 지원이 없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기존에 재산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기 보단, 언제든지 땀 흘려 일해 선교 사역을 위해 사용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개역한글에서는 "ἐν παντὶ καὶ ἐν πᾶσιν(엔 판티 카이 엔 파신)"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분리하여 하나는 앞("모든 일에")에 배치하고 하나는 뒤에("일체의") 배치하였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 의하여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판티(παντὶ)"는 단수로, "파신(πᾶσιν)"은 복수로 되어 있는데, 이 둘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영어 번역에서는 대부분 "every and all"이라는 번역을 대략적으로 채택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나 역시도 이 구문을 굳이 둘로 나누어 배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바울은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상황을 포괄하기 위해 각각 단수와 복수로 반복하여 강조했을 것이다.
 
 "배부르게 되기(χορτάζεσθαι)", "배고프기(πεινᾶν)"와 "풍부하기(περισσεύειν)", "궁핍하게 되기(ὑστερεῖσθαι)"를 각각 묶어서 물질적으로 부유한 것과 가난한 것을 나타내고 나열하며 강조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실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처하는 것과 경제적 고수익을 얻는 일에 익숙한 것과 별개로, 때때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다. 근면하게 노동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잘 안 풀릴 때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모든 방법이 좌절될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그 모든 상황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일반이다. 그 이유는 그가 어떤 비결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 네 가지 부정사는 "비결을 배웠노라"로 번역된 "메뮈에마이(μεμύημαι)"와 연결되어 있다. "뮈에오(μυέω)"는 신약성경에서 딱 한 번 사용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여기이다. 이 동사는 약간 특이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어떤 비결, 즉 노하우를 습득했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이것은 "입회시키다, 봉납하다"의 의미가 강하다. 즉 고대 밀교의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가입을 통해 얻는 신비한 지식을 뜻하는 전문 용어이다. 바울이 이것을 사용한 것은 자신의 지식을 마치 어떤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입교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하길 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 깨달음을 쉽게 얻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여러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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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가 알게 된 비밀스러운 지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바울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그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 주시는 자"는 "엔뒤나문티(ἐνδυναμοῦντί)"인데, "ἐνδυναμόω(엔뒤나모오)"의 분사형이다. 이 동사는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어떤 대상을 힘 있게 하는 것, 즉 "강하게 만드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그리스도의) 강하게 하는 그 능력을 여기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능력 주심에 힘 입어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의 "이스퀴오(ἰσχύω)"는 흔히 "able to"의 의미를 지닌다. 또는 "힘 있다, 권세 있다, 유효하다"의 의미도 있다. 그는 12절에서 나열한 바, 사실상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능력 있다고 선언한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능력 주심은 바울의 사상 속에서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만약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한다면 말이다(골 2:6). 
 
 극한의 환경에서도 움직이고 끊임 없이 노력하며 일할 수 있는 비결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힘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움직일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으며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 두고 있다. 항상 힘 있게 사는 것은 곧 그리스도가 그의 인생의 모든 것이자 의미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위해 움직이며,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준비까지 되어 있는 그에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오는 각양각색의 처지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풍족하나 빈곤하나 매 순간에 그리스도를 위해 몰두하고 최선을 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 요소는 이런 사람에게 좌절을 가져오지 않는다. 
 
 빌리보 교인들의 지원은 바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것은 아마 바울이 좀 더 편하게 사역하도록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사실상 그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에게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고, 따라서 그리스도 자체가 그 자신에게 움직일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린도 지역에 갔을 때 바울은 땀을 흘려가며 가죽을 제작하고 노동하는 것에 최선을 다 했다. 마찬가지로 그가 만약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움직일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의미와 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이 그리스도가 되도록 하자!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최우선의 가치, 그리고 삶의 활력과 원동력을 주는 근원으로 삼는다면, 곧 그리스도로 즐거워하고 그를 위해 일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 있다고 진정으로 느낀다면, 우리는 그 밖의 다른 것들의 부차적인 요인들에 크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모든 장소와 모든 시간에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천해질 수도 있고, 부유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상관인가? 그리스도를 위해 바치는 인생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계속 움직인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제시하는 비결이다.

 

 

<이단 생활!>

 

이단 생활! -프롤로그- (기독교 이단 웹툰)

기독교 이단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일상(?) 웹툰입니다. 이단 생활! -1화- (기독교 이단 웹툰) littlebiblicaltheolog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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