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생활! -87화- 가정 중심이 아닌 교회 중심 (기독교 이단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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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생활! -87화- 가정 중심이 아닌 교회 중심 (기독교 이단 웹툰)

바잇 카탄 2024. 10. 29. 12:46

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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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 엄마들은 걱정하긴 하지만 교회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키우면 하나님께서 좋은 신앙인으로 올바르게 자라도록 해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말하는 교육관, 양육관으로는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없다.
가정의 중심에 교회를 끼워 넣어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이자 기반인데 부모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순간들을 빼앗는다.
특히나 아이에게 있어 부모와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 받아야 할 존재는 나 자신인데
그 존재가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인 경험을 매 주일마다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아이에게 큰 불안감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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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웹툰을 올리면서 A이단의 L목사의 2023년 5월 14일 "그리스도인의 부모와 자녀"라는 설교를 들어보았다. 거기서 우리는 A이단을 이끌어가는 L목사의 가정에 대한 시각을 대략적으로 엿볼 수 있다. 

 

설교 내용 전반적으로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고 아이는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은 '자녀는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해라', '자녀를 낙심하게 하지 말아라' 등 성경에서 대략적으로 나온 내용들을 반복할 뿐이었고 실제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흥미로웠던 것은 이 모든 것들이 교회 중심의 생활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라는 내용에서 L목사는 '주 안에서'라는 단어에 집중하여 이 문제를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문제로 바꿔치기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을 주신다고 말하면서 '복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복은 자동으로 주어진다'라고도 말한다. 이후로도 L목사는 계속해서 잘 되려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면 잘 된다 라는 식의 내용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부모를 공경할 수 있을까? 아이가 부모를 공경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다. L목사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는 다만 '복 받으려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라는 논지를 강화하기만 할 뿐이다. 그가 바라는 가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자녀가 복 받기 위해 기복신앙적인 의도를 가지고 부모를 억지로라도 공경하는 것을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자녀의 태도라고 보는 것일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본문을 다루면서, L목사는 자녀를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만들기 위해 먼저 부모가 본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A이단의 교회학교 교사들이 이런 역할들을 잘 수행하고 있으므로 부모에게 이들에게 협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라는 본문 내용에 대해 집중하기 보다는 자녀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성경과 말씀 이야기를 가정에서도 많이 해야 한다는, 본문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다른 내용에 집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본문의 이하의 설교 내용은 자녀를 좋은 기독교인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들의 반복이다. 특히 이 대목에서 그는 부모의 '신앙'을 계속해서 강조하는데, 곧 '부모의 신앙과 그 부모의 기도가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라는 그의 주장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상으로 A이단의 전반적인 가르침을 선도하는 L목사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로 그 내용을 요약해 볼 수 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그러므로 잘 되려면 부모를 공경하라.'

'자녀 교육의 목적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모가 신앙이 좋아야 한다.'

 

이 두 가지 가르침에서 부모나 자녀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필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기복신앙에 대한 내용과 피상적인 '신앙생활 잘 해라'라는 조언이다. 이것은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 뿐이다. 아마 L목사는 부모와 자녀가 그리스도인 다운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많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교회 생활을 잘 하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A이단의 신도들이 가정에 대해서 이와 같은 빈약한 내용의 설교를 듣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이다. 이런 설교를 듣는 신도들은 다만 교회에 열심히 살기만 할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이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애착'에 대한 것이다. 좋은 애착은 아이가 부모를 신뢰하고 공경하게 만들며, 부모 역시 아이를 자연스럽고 친밀하게 대하도록 만들 수 있다. 반면에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아이는 부모를 거부하거나 혹은 과도하게 집착하며, 부모는 아이를 통제하려고만 하거나 아니면 방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애착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영유아 시절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와 많은 스킨쉽을 갖는 것이다. 또한 부모가 아이의 부름에 적절하게 응답하고 문제를 잘 해결해 주는 것도 포함된다(긍정적 피드백). 아동기가 되었을 때에는 정서적 교감과 상호 의사 소통 방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에 대해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말들을 많이 해줘야 한다. (이것은 훈육 시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이에게 사랑을 많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아이와 대화하고 눈을 맞추며 살을 맞대는 활동과 시간들을 늘려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어릴 적에 형성된 애착 관계는 향후의 교육의 판도를 결정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교육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교육 방식을 자신의 자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건강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먼저 아이와 부모는 좋은 애착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 난 뒤에 좋은 교육들이 제대로 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A이단 내에서의 생활은 아이와 부모의 이러한 애착 관계 형성에 중대한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전 글에서 지적하였다시피) 일단 부모들이 주말에 시간이 없다. 그리고 부모들은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제공한다. 부모는 교회 일을 하기 위해 바쁘기 때문에 자주 아이들의 부름이나 사소한 요구를 거절한다. 아이들은 그런 거절을 맛 보면서 쓰라린 감정과 쓸쓸함과 좌절을 맛 보는데,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온 세상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교회 일을 하기 위해, 봉사를 하기 위해 아이를 거절할 때, 아이들의 세상은 반복적으로 무너져 내린다.

 

이제 아이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타날 것이다. 사랑 받고 있다는 감각을 계속해서 집착적으로 확인하려는 아이와, 부모에게 거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아이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썩어 들어갈 동안 부모는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 하면 아이도 잘 자랄 것이라 막연한 착각과 망상을 하면서 자녀를 방임한다.

 

사실 '애착'이라는 것은 기독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사회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의 애착에 대한 연구를 언급하면서 이런 '애착 이론'의 모델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돌봄 개념이 가진 정서적 측면들을 조명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 동안 동행하시며, 우리가 삶의 모호함과 복잡함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기지'가 되신다"는 것이다.[각주:1]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심리적 '안전기지'로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존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분과 우리가 부모-자녀의 애착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특별히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이 언제라도 신뢰하고 의존할 수 있는 존재, 그런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좋은 가정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살을 맞대며, 함께 대화하고 공감하고, 또한 사랑하는 말을 많이 나눠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부모들의 이런 시간을 뺏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즉, 교회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아이와 좋은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랑의 교육을 알려줘야 한다.

 

나는 특히 기독교가 이 점에서 (다른 종교, 사상 등과 비교했을 때)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기독교만큼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종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좋은 기독교인이라면, 아이와 사랑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아이들은 사랑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사랑 받아야 할 대상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1. Alister McGrath, Christian Apologetics: An Introduction, trans. Jong Muon No, The Blessed People Publishing, 2024, 17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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