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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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라.
상급과 징계라는 것은 성경에서 왕이신 하나님, 그리고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와 관련이 있다. 즉, 만약 우리가 상급을 받는다면, 그것은 어떤 임무를 완수했을 때에 우리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해야할 마땅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무익한 종일 따름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뿐이다(눅 17:7-10). 우리는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우리가 상급을 받을 수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특별히 예수께서는 상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10:42)
이것으로 보건데 상급이라는 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기준을 벗어나는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고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징계에 대해서도 우리는 어떤 사람이 극악 무도한 죄를 짓지 않는 이상 그 사람에게 내려오는 징계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필자가 위의 징계에 대한 글에서 쓴 것과 같이 징계를 의미하는 헬라어는 교육하려는 목적의 용어이다. 또한 필자가 위의 글에서 썼던 것과 같이,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이 당한 악한 일이 그 사람의 죄의 정도나 질을 평가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보다는, 오히려 유대인들이 이런 시각을 견지하였다.
그러므로 사실상 A이단이 봉사를 열심히 하면 상급을 받는다라고 가르치는 것과, 교제를 빠지는 등 교회 일에 소홀히 하였을 때 징계를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자신들이 스스로 이런 평가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앉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가 갖고 있었던 신중한 입장과는 사뭇 다르며 상당히 과격하고 독선적이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이런 것들을 판단하고 평가할 기준을 주셨다는 성경 본문은 찾아보기 힘들다.
A이단은 사실상 자기네들의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면 하늘에서 큰 상급이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곳의 목사들 역시 이에 대해 자주 설교하며 신도들이 그들의 교회를 위해 시간과 비용을 사용하는 것을 그런 방식으로 합리화한다. 또한 그들은 자기네들의 교회의 교제에 빠지거나 혹은 열심히 봉사하지 않거나 자기들이 판단하기에 열심히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나쁜 일을 당하기라도 하면, 저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하지 않았더니 징계를 받았다고 수군 거린다.
이 징계에 대한 것들 중 가장 그들이 선명하게 주장하는 것은 목회자에게 대드는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는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목사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이 당한 온갖 불운들을 내세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고 선전한다.
어떤 목사는 자신이 추천한 직업이나 진로 혹은 결혼 등에 신도들이 순종하지 않았을 때 나쁜 일들을 당했다며 이것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아서 생긴 일들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신도들은 징계를 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목사의 말이나 조언 등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A이단에서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라고 부른다.
어떤 목사가 두 남녀를 중매해서 결혼하도록 만드려고 한다. 자매 측은 형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목사가 조언한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자기가 싫어하는 형제와 결혼한다. A이단에서는 이런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난다. 필자는 이런식으로 결혼하여 살고 있는 분들을 더러 알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목사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목사의 뜻에 대적하는 것은 정말 큰 죄이다. A이단의 어떤 형제가 목사와 싸우고 교회를 나갔다고 해보자. 그리고 얼마 뒤 그 사람이 크게 다쳤다고 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역시 자기네들이 섬기는 목사에게 대적하더니 저렇게 큰 일을 당했구나 하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목사에게 대들더니 하나님께서 치셔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자기들의 목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목사들이 상급, 징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그들은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A이단에서는 설교 시간에 목사를 소개할 때 "OOO목사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주시겠습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즉 그들은 자기네들 목사들이 하는 그 오류 가득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의 신도들은 성경 본문에서 "말씀"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성경 본문 자체를 떠올리기 보다는 그곳에서 듣는 설교, 곧 "말씀 시간"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사실상 하나님의 자리의 역할을 그곳의 목사들이 대리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신도들을 상급이나 징계의 교리로 옭아 매는 것은 이런 잘못된 우상화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우상화 작업은 그들이 제대로 된 복음을 가장 잘 전한다고 신도들이 여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 목사는 그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종이며, 하나님의 사자이고, 거의 사도에 준하다. 이런 틀이 깨져야만, 그곳의 신도들이 이런 세뇌와 잘못된 우상화 작업의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후에 A이단 내에서 목사들이 자기네들을 어떤 방식으로 우상화 하는 지, 설교를 통해서나 신도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통해서나 어떤식으로 하는 지에 대해서도 웹툰에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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