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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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이단의 어느 유명한 목사는 2019년 3월 10일자의 주일 말씀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은 가난해도 교회는 가난하면 안 된다. 복음 전하는 데에 초라한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말씀 듣는데 굉장히 거부감을 일으키고 불편해 한다."
이 "개인은 가난해도 교회는 가난하면 안 된다."라는 표어는 A이단이 어떤 곳인가를 아주 잘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위 설교를 한 목사는 A이단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A이단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도 매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즉 위 목사에 따르면 A이단은 개인이 가난해지고 피해를 받더라도 교회는 부유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동희 작가가 묘사한대로, A이단에서 신앙생활의 주인공은 개인도, 하나님도 아니고 "교회"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은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맞추고 봉사하고 생활할 것을 요구 받는다. 모든 스포트라이트와 대우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닌 교회이다. 그리고 이 교회의 중심에는 그곳의 목회자들이 있다. 개개인은 교회에서 쫓겨날 수 있지만, 목회자들은 총회에 찍히지 않는 이상 교회 중심에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도 개개인이 계속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매우 힘들 것이다. 그러나 A이단에게는 "상급"이라는 무적의 논리가 존재한다. 즉 지금 그곳의 신도들이 힘들고 가난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교회에 시간과 돈을 바쳐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미래에 얻을 상급 때문이다. 이 상급이 결국 무엇을 말하는 가에 대해서는 사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다만 A이단의 신도들은 막연하게 이것을 바라야 하고, 그러므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교회를 섬겨야 할 뿐이다.
그래서 A이단의 신앙생활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교회 안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특징 지어진다. 위의 동일한 설교에서 A이단의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구원 받은 지 1년, 2년, 3년 과실나무는 3년이 지나면 열매 맺기 시작한다. 구원 받은 이후에 2년, 3년 지나면 어느 정도 성장해서 그 다음에는 주님을 위해서 봉사 일을 해야 된다."
"교회(에서)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찾아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은 영혼을 서브(serve)하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2023년 11월 8일자 수요 설교에서 A이단의 교회의 봉사는 모두 중요하다며 아것들 중 어떤 것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이라고 겁을 준다:
"교회 안에서 되는 일 중 작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영혼을 세우고 영혼을 건지는 일이 어떻게 작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교회 안에서 어떤 일에 참여되도 정말 중요한 일들인 것이다. 다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봉사를 하면서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일은 합당치 않은 것이다. 주님이 그걸 합당치 않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한국 교회 일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 A이단에 소속된 교회만을 뜻한다. A이단의 어느 목사는 2023년 9월 17일자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일반 기독교인들을 비방한다:
"어쨌든 지금 기독교인들도 옛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그 이스라엘 사람들하고 어쩌면 꼭 닮았는지 모른다. 자기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천국에 대한 관심이 없다. 옛날 18세기 당시에 영국에서 요한 웨슬리, 찰스 웨슬리, 찰스 스펄전, 찰스 피니, 조지 휫필드, 이런 전도자들이 유럽에서 활발하게 복음 전하고 미국에서는 D.L.무디에 의해 미국에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유럽에 가서 전도하고 (그랬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나? 다 꺼져버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미국에 조금 남은 거 같은데 그것도 너무 약하다. 우리처럼 세계 선교를 적극적으로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단체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인다."
그러면서 복음 전파를 빌미로 돈을 자기들 교회에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자신들 외에 복음을 전파하는 곳이 거의 없으니, 사실상 자신들의 교세 확장을 위해 돈을 내고 시간을 바치라는 것이다.
"복음 전하는 데 많은 물질이 필요하다. ... 이번에 수양회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았는가. (수양회) 숙소가 아주 모자르다. ... 그래서 빨리 지어야 한다. 주님 오시기 전에 빨리 빨리 지어야 한다. 왜? 수양관에서 제일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양회 하는 동안에 먼저 구원 받은 사람들은 신앙이 푹푹 자란다. 막 땀 흘리면서 수고하고 ... 수양회 한 번 치르고 나면 신앙이 푹 자란다."
"지난번에 한 번 '아이고, 수양관 짓는 데 얼마나 든다고 그래요?' (그랬더니) "적어도 한 500억은 들 거예요.' ... '아이, 그럼 그거 어떻게 지어요.' ... 간단하다. 1억씩 헌금하는 사람이 500명만 나오면 되지 않는가? 그렇지 않은가? 웃어야 한다. 그거 간단하다. ... 우리 교회가 얼마나 지금 엄청난가. 얼마나 힘이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 뒤에서 응원해준다. 못할 게 뭐 있는가? ... 하나님이 뒤에서 후원해준다. ... 1억 한다니까 겁나는가? ... 왜 못하는가? ... 우리가 열심히 돈 벌어서 뭐 할 건가. ... 하나님이 부르면 가야 한다. 다 털어버리고 가야 한다. ... 구원은 똑같이 받았어도 주님 앞에 가서 영광이 다르다는 거 명심해야 한다. 비실비실 살다가 천국 뒷자리만 가면 되겠다 생각하지 마라."
A이단에서 탈출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빚을 지는 등 막심한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A이단에 소속된 사람들은 이런 피해자들을 향해 '그건 그 사람 개인의 문제이며 교회와는 상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그들의 사상, 곧 '개인은 가난해도 교회는 가난해서는 안 된다.'라는 무서운 사상이 여실히 드러난다. 교회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서 개인들은 희생을 치룬다. 그리고 그런 희생으로 인한 결과는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다. 교회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이런 피해자들이 교회에 다니며 희생할 때에는 상급이 있으니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서도, 이 사람들이 이상함을 눈치 채고 A이단에서 나가면 '실족했다'면서 '애초에 구원이 아니었다'며 비방한다. 즉 처음에 약속한 상급이 그들에게서 나갔다는 이유로 갑자기 무용지물이 된다. 그들이 약속한 "확실한 구원" 역시 그들에게서 나가는 즉시 갑자기 "애초에 아닌 것"으로 바뀐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이 자랑하는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닌가?) 모든 것의 기준이자 중심은 "교회"이다.
이런 점에서 동희 작가가 묘사한대로, A이단에서 신도 개개인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다. 주인공은 교회이다. A이단에서 중요한 것은 '나아질 내 자신'이 아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로 인해 나아질 교회'이다. 모든 사람들이 A이단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는 것,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반면에 초대 교회의 신앙생활, 모임은 이들이 제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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