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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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웹툰을 비기독교이 분들이 보고 있다면 소위 '작정 헌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할 수 있다. 작정 헌금이란 교회에서 매우 큰 지출이 예상되거나 현재 지속되고 있을 경우 각 신도들에게 헌금할 금액을 정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강제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교회의 작정 헌금은 교회당 건축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정 헌금이라는 것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목사들은 신도들에게 작정 헌금을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 성경에 등장하는 '서원'이나 아니면 모세의 성막 건축 혹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 등의 사례를 가지고 오곤 한다. 마치 성경에서 각 사람이 금액을 정해 그것을 강제로 지키는 방식의 헌금이 권장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경솔하게 서원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예수께서는 하나님께 함부로 서원하지 말고 가급적이면 서원 자체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모세의 성막 건축과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사람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에 해당하지, 미리 금액을 정하여 납부하는 사례로는 적절하지 않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이런 사례들은 매우 열심을 보이는 일부 특수한 사람들의 사례나 상황들이다. 이것을 일반적인 신도들에게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은 부적절할 것이다.
물론 헌금 금액을 작정하려는 자발적인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 건축이나 작정 헌금에 대해서 비판을 가할 때 A이단을 옹호하는 신도들이 취하는 변명이 보통 이와 같다. 즉 그렇게 헌금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그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0만원, 5000만원, 1억 등의 금액을 작정 헌금 할 때에 이것을 한 번에 현금으로 일시불 할 수 있는 신도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큰 금액을 작정하는 신도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에서 자신의 능력에 맞게 지불하는 것이 아닌, 은행 대출 등 돈을 빌려 헌금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회는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면서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고 눈 감고 그 돈을 받는다. 성경 어디에 남에게 빚을 지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바쳤다는 내용이 나오는가?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쁘고 즐겁게 받으셨다는 내용이 어디에 나오는가?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고하라.
https://cafe.naver.com/littletheology/288
[무싸르 댓글] 대출하여 헌금하는 문제에 대하여
대한민국 모임의 시작, 네이버 카페
cafe.naver.com
정상적인 교단이라면 신도들이 빚을 지면서 헌금을 하고 있을 때 그 신도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이 같은 방식으로 헌금하지 말라고 막아야 한다. 그러나 A이단은 막기는 커녕 오히려 신도들에게 은행과 대출 상품을 추천해주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과 정말 잘 부합한다: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2)
우리 선한 목자이신, 그리고 양을 돌보는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빚을 지면서 건물을 신축하고 증축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상상이나 되는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왕국의 확장을 위해서는 남들이 보기에 꿀리지 않을 정도의 으리으리한 건물이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사람들이 전도가 잘 된다며 헌금할 금액을 작정하도록 만드시겠는가? 필자는 우리 예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잘 안다.
도대체 이렇게 건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솔로몬도 성전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었다며 그런 사례에 호소하곤 한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라고 먼저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토라에는 성막에 대한 명령과 도안만이 있다.
구약학자들은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결코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본래 솔로몬의 성전이 있기 전에는 예배 중심지였던 실로에 성막이 존재하고 각 지역마다 산당들이 있어서 성막에 모이는 절기 이외에는 가까운 근거리에 있는 산당을 통해 예배를 드리곤 했다. 레위인들 역시 이것에 맞춰 이스라엘 땅 곳곳에 퍼져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면서 예배의 중앙 집권화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곧 예배와 관련된 물자들과 예배를 진행하는 레위인들이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 수록 물자와 인력 자원들은 유다 지파로 집중되었고, 상대적으로 북이스라엘의 10 지파들은 점점 가난해졌다.
그래서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에 반대하여 10 지파의 북이스라엘 왕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북이스라엘 영토 안에 예배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었다. 이것은 북이스라엘의 물자와 인력 자원들이 남유다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가장 핵심적인 조치였다. 학자들은 그가 세운 금송아지 역시 실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웠다라기 보다는 실제 언약궤를 본 적이 없는 그가 케루빔 등의 형상을 작업할 수는 없었을 것이므로 주변 지역의 전통이나 문화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긴다. 즉 여로보암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 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과 르호보암, 곧 다윗 왕조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건축은 또한 이방의 우상숭배적인 문화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친숙하게 만들었다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토라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성전 건축에 대한 도안이나 명령을 전달하고 있지 않다. 오로지 성막에 대한 내용만이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솔로몬은 이방 문화, 특별히 두로왕 히람에게 성전 건축을 맡김으로써 두로의 성전과 비슷한 형태로 성전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솔로몬은 성전 앞에 두 기둥(야긴과 보아스)을 세우는데, 이것은 명백하게 당시 이방 국가들의 성전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그리고 결국 솔로몬은 이 화려한 외국 양식의 성전 안에서 외국의 이방 신들의 만신전을 구성하고 우상숭배를 하였다.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짓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된 이후 다시 성전을 재건하여 맞이한 제 2성전기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전은 정치와 권력과 경제의 중심지였고 온갖 부조리와 악의 중심 공간이었다. 지배계층의 은행이자 비리를 위한 곳간이었으며 종교적으로도 중앙 집권화를 위한 탄탄한 배경이었다. 유대인들의 전통적 신앙은 성전을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많은 유대 문헌들은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자신들의 성전의 화려함과 부유함을 자랑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결국 예수께서는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고 그대로 되었다.
예수님의 반(反)성전적인 발언과 가르침들은 유대 종교 당국자들에게 매우 불쾌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예수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사마리아) 어느 곳이 예배 장소로서 정통성이 있는가에 대해 그런 것들은 별 의미가 없으며, 신령하고 진실된 예배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발언하신다.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으며, 성전 안에 당국자들의 인증을 받은 장사꾼들을 내쫓으셨다.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초기 기독교를 이끌면서 건물을 지어 올리는 것에 별 흥미가 없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 덕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제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아닌 신령하고 참된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거의 3세기에 이를 때까지 기독교인들은 교회당을 세울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런 건물들 없이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예수를 따르는 삶을 실천했다.
건축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의 중심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신도들의 능력을 넘어서는 건축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더욱이 먼저 건축을 벌려놓고 신도들에게 빚을 져서 금액을 작정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예수를 따른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일 것이다.
그리고 A이단이 이런 악한 일들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한다면, 어쩌면 탈출만이 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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