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기독교인, 그리고 술: 음주는 죄가 아니다. (feat. 구원파,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

기독교 관련 생각들

예수, 기독교인, 그리고 술: 음주는 죄가 아니다. (feat. 구원파, 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

바잇 카탄 2023. 11. 22. 22:41

written by 바잇 카탄 in 성경과 작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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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기독교, 술.. 와인 사진
기독교인과 술

 

 

 우선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에는 대침(대한예수교침례회)을 다녔던 경험 때문이다. 그런데 이 주제는 대침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교회들 모두에게 사실상 해당될 것이기 때문에 이 카테고리에 작성하기로 했다.

 

 대침,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술을 금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굉장히 보편적인 관습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떤 기독교인이 자신이 종교적인 이유로 금주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으레 '교회 다니나 보다'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개신교에 한정해서 말이다. 가톨릭의 경우에는 음주를 금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 때 수도원이 각광받았고 금욕이 미덕이었던 가톨릭이 오히려 개신교보다 음주에 대해 관대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께서 술을 드시는 것이 참 좋았다. 술을 드시는 날이면, 아버지는 통닭과 맥주 몇 병을 손에 들고 귀가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와 누나는 식탁으로 쪼르르 달려가 통닭을 먹으며 행복해했다. 또 그런 날은 부모님들도 기분이 좋아서, 우리의 장난에도 잘 웃어주셨고, 운이 좋으면 용돈을 천 원 혹은 이천 원씩 손에 쥐어 주셨다. 맞벌이로 인해 집에 자주 안 계시고 매번 힘들어하시던 두 분이 모처럼 부드러워지는 날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맥주 한두 잔씩 하시던 그런 날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두 분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더니, 부모님은 더 이상 술을 드시지 않았다. 알고 보니 교회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죄이기 때문에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도 그런 영향을 받아, 술을 매우 나쁜 것, 절대 입에 대서는 안 되는 금기의 무언가로 여기게 되었다. 술을 먹는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어떤 선을 넘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내가 다니던 교회[각주:1]에서는 이런 견해를 더욱 부채질했는데, 알게 모르게 뒤에서 술 마시는 신도들을 저격하는 설교를 하거나, 술 먹는 것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죄인가 이야기하기도 했고, 천주교는 술을 먹도록 허용한다며 완전 사이비 이단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아주 오랜 기간 기독교인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물론 이것은 사회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매우 비현실적인 생각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니 거의 모든 중요한 자리는 술자리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친목을 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것을 억지로 안 하려고 하니, 엄청난 소외와 압박이 들어왔다. 교회에서는 이런 것들이 기독교인이라면 겪어야 할 소위 '고난'이라고 설명했고, 대부분의 다른 신도들도 그런 가르침을 따르며 자신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술을 결단코 마시지 않았는가를 간증하며 자랑했다.

 

 

 


 

 

 

 

 이제 대침을 나오고 나서 문득, 그때 왜 그렇게 술을 금지했던 것인지, 그리고 그런 금지에는 정말 어떤 성경적인 근거가 명확하게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인터넷 등에서 찾아봤는데, 이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는 글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전반적으로 성경이 술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더욱 궁극적으로는 예수님 시대 당시에는 술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은 음주를 하셨는가, 하지 않으셨는가의 쟁점으로 모이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 술을 금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술을 드신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킹제임스 우월주의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 같은데, 이들은 흠정역의 "포도즙"이라는 해석에 착안하여 예수님께서는 포도주(wine)를 드신적이 없고, 포도즙(?)만을 드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거 헬라어 용법에서는 포도즙이나 포도주나 모두 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함유된 어떤 액체를 음용하신 것은 맞으나, 그것은 술을 드시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물을 소독해서 마시는 당시 풍습 때문에 자연스레 그렇게 하신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드신 것은 '술'이라기보다는 '술이 미량 들어간 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기독교인들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글들의 말미에는 항상 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성경 구절들이 제시된다.

 

 이제 이 모든 견해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고, 또 여러 책들을 참고하여 조사해 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기독교인은 술을 마셔도 된다"이며, "예수님은 분명하게 음주를 하셨다"이다.

 

 

 


 

 

 

 

 먼저 킹제임스우월주의자들이 말하는 내용을 분석해 보자.

 

 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 포도주"가 있는데,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만드셨던 것이 바로 이것이며, 심지어 최후의 만찬에서 드셨던 것도 이것이다. 이것은 "wine"이 아니라, 발효되기 이전의 포도즙이다.

 

 나는 이 같은 주장을 어느 외국 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거기서는 구약 성경의 술을 세 가지, 곧 "야인", "티로쉬", "샤카라"로 분류한 뒤 각각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고 있었다.[각주:2] 이 중 킹제임스우월주의 진영에서 "새 포도주"라고 말하는 것은 "티로쉬(תִּירוֹשׁ)"에 해당한다. 그 외 "야인"이나 "샤카라"는 모두 알코올이 있는 술(wine)을 의미한다. 이 "티로쉬(תִּירוֹשׁ)"는 어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는 단어이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는 꽤 밝혀져 있는데, 발효되기 이전의 포도즙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분명하게 발효를 마친 "단 포도주"를 의미하기도 한다. 「HALOT」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명시한다[각주:3]:

It is clear that here תִּירוֹשׁ does not only mean must, but wine.
"여기서 티로쉬는 포도즙을 의미할 뿐 아니라 와인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 명확하다."

for the meaning sweet wine, must. (강조는 저자의 것임)
"디저트 와인, 포도즙의 의미."

 

 그러므로 "티로쉬(תִּירוֹשׁ)"에는 "포도즙"의 의미만이 있는 것이 아닌, "포도주"의 의미도 있다. 「HALOT」은 특히 이것이 "사바(שׂבע)"와 함께 쓰일 때 "음식과 술로 만족하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티로쉬"가 쓰인 본문에서는 문맥을 통해서 이것이 정말 발효가 안 된 포도즙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와인을 의미하는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막연하게 무조건 포도즙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의 외국 사이트에서는 가나 혼인잔치의 예수께서 만드신 술이 "the 'best' or the 'good' wine"이라 불린다며 이것은 "티로쉬"를 뜻하는 것이라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헬라어로 "τὸν καλὸν οἶνον"이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좋은 포도주"라는 뜻이다. 또 최후의 만찬 등에서 예수께서 마신 음료가 "새 포도주"라는 근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주장들은 정말 많았지만.

 

 또 다른 킹제임스우월주의자의 블로그 등에서는 헬라어 "오이노스(οἶνος)"가 "포도즙"과 "포도주" 둘 다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이것을 일괄적으로 "wine"이라 번역했다며 이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오이노스(οἶνος)"가 "포도주"를 뜻한다는 것은 발견할 수 있었는데, "포도즙"을 뜻한다는 사실은 찾기 어려웠다. 「BDAG」에서 "오이노스(οἶνος)"는 명백하게 "포도주"만을 의미할 뿐이다.[각주:4]

 

 그러다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는데, "새 포도즙"으로 번역된 행 2:13의 단어는 "오이노스(οἶνος)"가 아닌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그것은 "글레우코스(γλεῦκος)"였다. 「BDAG」에 의하면 이 "글레우코스(γλεῦκος)"는 "포도즙", "단 포도주"를 의미하는데,[각주:5] 오히려 이것이 "티로쉬(תִּירוֹשׁ)"의 "sweet wine, must"의 의미와 가까워 보인다. 행 2:13의 이곳 외의 다른 신약성경의 "포도주"들은 "오이노스(οἶνος)"이며, 신약성경 저자들은 이에 대해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고 혼동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오이노스(οἶνος)" 는 히브리어로는 "야인(יַ֫יִן)"인, 알코올을 함유한 와인으로 여기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킹제임스우월주의자들이 말하는 "티로쉬(תִּירוֹשׁ)"의 가장 적절한 헬라어 번역이 있다면, 그것은 "오이노스"가 아니라 "글레우코스(γλεῦκος)"일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오이노스(οἶνος)"가 "포도즙"도 의미할 수 있었다는 근거를 찾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상한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닌)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헬라 문헌을 제시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남겨주기 바란다. 그리고 예수님과 관련된 "오이노스(οἶνος)"가 굳이 "포도주"가 아닌 명확한 근거를 아는 분도 댓글 바란다.

 

 참고로 카슨(D. A. Carson)은 "오이노스(οἶνος)"가 "포도즙"도 의미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포도 재배를 전문적으로 하는 농경 전통을 가진 나라들에 그런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라고 지적한다.[각주:6]

 

 

 

 


 

 

 

 

이 외에도 혼인 잔치의 연회장의 발언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것이 포도주임을 확실하게 나타낸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만드신 좋은 "오이노스(οἶνος)"를 받은 연회장은 신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 2:10.

 

 여기서 "취한 후에"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메뛰스또신(μεθυσθῶσιν)"이며, "메뛰스코(μεθύσκω)"의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복수형이다. 이것의 의미는 "술에 취하게 하다"이다. 여기서는 수동태로 쓰여서 "술에 취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만드신 "오이노스(οἶνος)"가 분명하게 취하게 만드는 성질의 와인이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의 연회에서는 보통 처음에 좋은 술을 내다가 사람들이 취해서 술맛을 잘 분별하지 못할 때쯤에 물에 희석한 술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헬라의 연회에서는 모든 진행을 주관할 연회장, 즉 "아르키트리클리노스(ἀρχιτρίκλινος)"를 임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각주:7] 연회장의 주요 임무는 성공적인 연회를 위해 손님들이 음주를 과도하게 하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연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미스러운 일들은 주최 측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하는 연회장의 직분은 굉장히 명예로운 것이었고, 따라서 막중한 책임이 뒤따랐다. 연회장은 손님들의 음주를 유심히 감독하다가, 그들이 너무 취할 것 같으면 의도적으로 포도주에 물을 희석하여 알코올 함량을 낮춘 것을 제공했다.[각주:8] 

 

 따라서 연회장이 신랑에게 위와 같이 말한 것은 처음에 높은 알코올의 좋은 품질의 와인을 내다가, 손님들이 적당히 취한 뒤에 물을 섞은 와인을 내야 하는데, 왜 지금 와서 좋은 와인을 내냐고 의아해한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을뿐더러, 손님들의 과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여기서 "오이노스(οἶνος)"를 "포도즙"으로 보게 되면, 연회장이 신랑에게 이렇게 따진 것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워진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과연 음주를 하셨는가? 위의 결론대로라면 가나 혼인 잔치나 최후의 만찬의 "오이노스"를 음용하신 것이 맞다면, 음주를 하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평가한 것을 보면 일상에서도 음주를 즐기셨던 것 같다. 마 11:19는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 11:19.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오이노포테스(οἰνοπότης)"로, "술고래", "주정뱅이"라는 뜻이다. 「BDAG」에서도 이것을 "술꾼, 주정꾼, 포도주를 즐기는 자"로 말한다.[각주:9] 세례요한은 분명 킹제임스우월주의자들의 바람과 같이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예수님은 포도주를 음용하셨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이런 비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음주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도 당시에 모두 음주를 즐겼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대교에서는 술에 취하는 것 자체는 좋게 보지 않았다(전 10:17).[각주:10]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술을 마시는 자이다"라고 모함한 것이 아닌 "술고래, 주정뱅이이다"라고 모함한 것이다. 앞에 "먹기를 탐하고"가 단순히 음식을 가리지 않고 드신 것을 모함하여 말한 것처럼 말이다. 

 

 포도주는 팔레스타인을 포함하여,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일상생활의 일부였다고 한다.[각주:11] 포도주는 분명하게 일반 음료였으며, 이 때문에 랍비들은 포도주 생산에 대한 논쟁을 벌일 정도였다. 왜냐하면 이방인이 자기 우상에게 드리는 포도주는 철저하게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같은 유대인이 정결례를 행한 상태에서 생산한 포도주만을 마시는 것이 권장되었다. 고고학자들이 포도주 생산지 곁에서 정결례 욕조를 자주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각주:12] 또 "포도즙"은 일상적으로 마시는 음료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밀봉하거나 냉장하지 않는 이상 금방 발효되어 버렸기 때문이다.[각주:13] 따라서 "포도즙"이나 그 밖의 "발효되지 않은 음료"를 예수님께서 일상 속에 음용하셨다고 여기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음용하셨던 이것은 과연 물에 포도주를 살짝 탄, 소위 "소독물"이었을까? 그러나 이것은 과도한 추측이다. 왜냐하면 지중해 지역의 샘물은 음용할 수 있었으며,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은 그것이 의학적으로 안전할 뿐 아니라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각주:14] 물을 소독하기 위함이라는 추측은 아마 유대인들이 식사 때마다 포도주에 물을 희석시켜 사실상 '물 대용'으로 일상적으로 자주 마셨기 때문에 생긴 것 같다. 

 

 예수님 당시에는 "물에 섞지 않은 포도주"와 "물에 섞은 포도주", 그리고 "독주"라 불리는 "혼합한 포도주"가 있었다.[각주:15] "물에 섞지 않은 포도주"는 발효된 와인의 원액으로, 자연적으로 증류를 거치지 않은 도수인 대략 11-12도의 알코올을 함유했다.[각주:16] 이것에 일반적으로 물을 희석시켜서 "물에 섞은 포도주"를 만들어서 주로 음주하였는데,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대략 2-4:1[각주:17] 정도였다고 한다. 탈무드에서는 이것이 3:1로 나오며, 샤론의 포도주는 2:1이었다.[각주:18] 카슨은 이것이 미국의 맥주(5-6도 이상) 보다 좀 더 낮은 도수라고 말한다.[각주:19] 이것은 대략 2-5도 사이의 도수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한국의 맥주와 비슷).

 

 이 외에 "혼합한 포도주"가 있었는데, 이것은 맛이나 향을 첨가하여 더 독한 술을 만든 것이었다. 이 술을 즐기는 것은 지중해 문화권에서도 부정적으로 여겨졌다.[각주:20]

 

 

 

 


 

 

 

 

 자,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술을 마셔도 되는 걸까? 위의 자료들로 보건대 마셔도 된다. 

 

 물론 성경에서 술 취하는 과도함에 대해 자주 반복해서 경고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음주는 좋지 않을 것이다(근데 사실 이건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마찬가지 아닐까?). 또한 다른 형제가 실족할 것 같으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했던 바울처럼(고전 8:13), 만약 기독교인이 술을 먹는 것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다른 기독교인과 함께 있을 때는 술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굳이 그 기독교인의 마음을 흔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 밖에 본인이 절제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판단된다면 구태여 마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성경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술을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니며, 그러므로 마셔도 된다는 것이다.

 

 

 


 

 

 

<이단 생활!>

 

이단 생활! -프롤로그- (기독교 이단 웹툰)

기독교 이단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일상(?) 웹툰입니다. 이단 생활! -1화- (기독교 이단 웹툰) littlebiblicaltheology.tistory.com

littlebiblicaltheology.tistory.com

 

 

  1. 구원파라 불리는 대한예수교침례회 [본문으로]
  2. https://christianquestions.com/bible-questions/what-is-the-difference-between-old-new-wine/ [본문으로]
  3. L. Koehler and W. Baumgartner, M. E. J. Richardson ed. the Hebrew &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ment, Vol. 2, Brill, 2001, p. 1728. [본문으로]
  4. W. Bauer, 번역: 이정의, "바우어 헬라어 사전", 생명의말씀사, 2017, p. 1066. [본문으로]
  5. Ibid., p. 302. [본문으로]
  6. D. A. Carson, 번역: 박문재, "요한복음", 솔로몬, 2017, p. 298. [본문으로]
  7. Craig S. Keener, 번역: 이옥용, "요한복음 II", CLC, 2018, p. 1490. [본문으로]
  8. Ibid., p. 1491. [본문으로]
  9. Bauer, op. cit., p. 1066. [본문으로]
  10. 연회장이 필요한 이유가 주로 이것이었다. [본문으로]
  11. Keener, op. cit., p. 1461. [본문으로]
  12. Miriam F. Vamosh, 번역: 임숙희, "예수 시대의 생활풍습", 바오로딸, 2006, p. 69. [본문으로]
  13. Keener, op. cit., p. 1459. [본문으로]
  14. Ibid. [본문으로]
  15. 김창영 ed., "성경문화배경사전", 생명의말씀사, 2022, p. 373. [본문으로]
  16. https://cfc.sebts.edu/faith-and-culture/was-new-testament-wine-alcoholic/ [본문으로]
  17. Keener, op. cit., p. 1459. [본문으로]
  18. 김창영 ed., op. cit., p. 373. [본문으로]
  19. D. A. Carson, op. cit. [본문으로]
  20.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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